삼국지) 적장의 아들에게 학살 당했던 관우의 후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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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년 관우가 북진을 하고 양양, 번성을 포위한 뒤 홍수에 쓸려 다니는 위군을 학살하는 과정에서
조위의 숙장 우금이 항복하고 방덕 또한 포로로 잡혀 옴.
이 때 관우가 방덕에게 '너의 형이 한중에 있고, 나도 너를 장수로 삼고 싶은데 항복하지 않을래?' 라고
관우답지 않게 매우 정중하게 항복을 권유했지만 방덕은 오만 욕을 하며 항복을 거부했고 결국 참수 당했음.
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전장에서의 은원관계인 듯 보이지만

방덕의 아들 방회는 관우를 아버지의 원수로 여기고 훗날 종회의 촉정벌군에 종군해 성도에 입성한 뒤
촉 전역을 샅샅히 뒤져 관우의 후손들을 도륙한걸로 알려져 있음.
이 때 관우의 손자이자 한수정후를 이어받은 관이를 비롯해 관씨란 관씨는 다 학살 당하고
일부만 간신히 중국 각지로 도망치거나 형주에 남아있던 몇몇 관씨 일가만 살아 남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신빙성이 낮다고 알려진 촉기의 기록이지만
배송지가 딱히 반박 주석을 달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느정도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음.
만약 사실이라면 관우 입장에서는 항복을 거부하는 적장을 벤, 당시 전쟁 규범에서는
일반적인 행위의 결과가 40년 뒤 일가 대학살이라는 가혹한 복수극으로 돌아 온 꼴.
